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振り出しに戻る人生と、亡き兄への悔恨

振り出しに戻る人生と、亡き兄への悔恨


  


札幌に来てから、体調が芳しくない。更年期の症状なのか。
更年期を経験しながら、
一番多く
思い出した人は、天国に行った兄だ。

心臓の手術後、新型コロナウイルス禍の真っ只中、ソウルの病院でICUに入った後、
面会もできず、
顔も見ることもできず、別れを告げた。

私は、あまりいい妹ではなかった。

兄は事業をすると、言いながら、家族に大変な負担を負わせ、それに対する恨みが、
残っていたようだ。
兄は若い頃に、急性糖尿病から、透析に、至るまで大変な日々を
送った。

兄は、いつも具合が悪かった。病気でも、何かをしようと挑戦したが、
そのようなことが、
うまくいかず、借金に戻った。

学生時代は運動も上手で、リーダーシップもあって、人気があった。それで私の家は、
兄の友達でいつも
賑わっていたのを、覚えている。

しかし、兄さんは死ぬところを何度も、乗り越えながら苦労したが 、
今は私たちのそばにいない。

私は今更年期で、体のあちこちが、痛くて苦しんでいる。あまりにも、
突然訪れた、関節痛だ。指は、曲げられないくらい痛くて、全身から、
潤滑油が抜けたように、きしみついている。

最近、私も知らないうちに、
痛いという話を、たくさんしながら、生きている。
今、20数年ぶりの、札幌での生活が、スタートしているが、また、全くゼロから
のスタートだ。
此の間、その時々、夫々の場所で色々な事をし、夢中になって、
やってきたはずだが、
何かが、少しはうまくいくようになると、決まって、
暗雲が立ち込めて、振り出しに戻される。

それが、私の癖なのかと、笑ってやり過ごすには、大分の歳月が、流れたのを
色々なことで、知らしめられている。

兄はきっと、私より何十倍も痛かっただろう。雨が降る兆しが見えると、兄は
さらに苦しがり、部屋から出てこなかった。
しかし、痛い表情はしたが、痛いと
いう言葉は、あまり言わなかったようだ。
今私は、やっとこの歳になって、やっと兄さんをほんの少しだが、理解しつつ
あるのかもしれない。ごめんなさいと、言いたい。大変だったね、という言葉と共に。

若い頃は、本当に分からないことがある。年を取るにつれて、理解できることが
あって若い頃、私たちはミスもして失言もして、後悔しながら生きていく。
私は兄が、どんなことを考えながら生きていたのかは、よく分からない。しかし、
家族に申し訳ない気持ちがあったなら、その必要はないと、言ってあげたい。
一生懸命生きてくれた、兄さんの人生に、感謝していると言いたい。

そして私は今、札幌で、また新しく始めようと思う。私はこれから、この都市
で生きていくつもりだ。釜山とは違う、自然環境の中で適応しながら 、新しい
人たちに会って、当たり前の顔をして、平気なように生きていくつもりだ。

今すぐ違和感が、全くなるわけではないけれど、ただ私の人生の延長線で生じた
小さな変化であり、私が、よく知っているところに、戻ってきたと思いながら
生きていくつもりだ。ざっくり言うと、そういうことです。

そして会いたい知人が、この都市にいるという事実に、感謝しなが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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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rother`s memory(本編 英語訳)

I have come to Sapporo and felt unwell, maybe because of menopause.
The person I have thought about the most during my experiencing menopause is my brother who went to heaven. It was during the pandemic, so I didn't get to visit him after he went into ICU after heart surgery, so I said goodbye without seeing his face. I wasn't a very good younger sister. He was a businessman, and he made our family suffer a lot,
and I think there was some resentment about that.
He had a rough time in his younger years with acute glucose and dialysis. He was always sick. He tried to do things while he was sick, but those things didn't work out
and he ended up in debt.
In school days, he was popular for his athleticism and leadership, so I remember our house was always full of his friends. But he struggled, coming close to death several times. He is no longer with us. I'm struggling with menopause right now, with aches and pains all over my body. The joint pain came on so suddenly. I can barely bend my fingers. My whole body is creaking like it's losing its lubrication. I've been complaining a lot lately without realizing it. My brother must have been dozens of times sicker than this. At the first sign of rain, he would get even more distressed and refused to come out of his room. He would look sick, but I don't think he said much about pain. As I grow older, I feel like I understand him in a very small way. I want to tell him "I'm sorry, and I know you had a really hard time. When we're young, there are some things we really don't understand. When we're getting older, there are things we can understand. When we are young, we make mistakes and say things that we regret. I don't know what was going through my brother's mind. But if he felt sorry for our family, I want to tell him that he doesn't have to. I want to tell him that I am grateful for the life he lived hard, very hard
I will now live in this city.
I'm going to live in this city, in a different natural environment from Busan, and I'm going to adapt, meet new people, and live like it's nothing. It's not entirely without its awkwardness right now, but it's just a small change in my life and I'm back in the place I know well. And I'll be thankful that the people I want to meet are in this city.

My brother`s memory 韓国語翻訳
갱년기를 경험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난 사람은 하늘나라로 간 오빠다. 심각한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심장수술 후 ICU에 들어간 후 면회도 못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작별을 했다. 나는 그다지 좋은 동생은 아니었다. 오빠는 사업을 한다면서 가족들을 많이 힘들게 했었고, 그것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었던 거 같다. 오빠는 젊었을 때는 급성 당료로 그리고 투석에 이르기 까지 힘든 날들을 보냈다. 오빠는 항상 아팠다. 아프면서 뭔가를 하려고 도전했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잘되지 않았고 빚으로 돌아왔다. 학창시절엔 운동도 잘하고 리더십도 있어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엔 오빠 친구들로 항상 북적거렸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오빠는 죽을 고비를 몇번씩 넘기면서 힘겹게 살았지만 지금은 우리 곁에 없다. 나는 지금 갱년기로 몸 여기저기가 아파 고생을 하고 있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관절통이다. 손가락은 구부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온몸에 윤활유가 빠져나간듯 삐걱거리고 있다. 요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프다는 소리를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빠는 이것보다 몇십배는 아팠을 것이다. 비가 오는 징조가 보이면 오빠는 더욱 힘들어 했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표정은 지었지만 아프다는 말은 많이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지금 나는 겨우 이나이가 되어서야 오빠를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많이 힘들었구나 라는 말과 함께. 젊었을 때는 정말 알수 없는 일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일들 때문에 젊은 시절 우리는 실수도 하고 실언도 해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오빠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럴 필요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살아준 오빠의 인생에 감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이도시에서 살아갈 것이다. 부산과는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또 적응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듯 살아갈 것이다. 지금 당장 위화감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그냥 내 인생의 연장선에서 생긴 작은 변화이고 내가 잘 아는 곳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천천히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지인이 이도시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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もう、四半世紀以上前、海外旅行の経験もないまま、海外に向けて飛び出した。何かを明確に決めて、明確にしていくことが人生だ、と考える人もいるだろう。 しかし、私が生きてきた人生は明確なことがなく、やや中途半端で、答えもなく、分からないことの連続だったようだ。

そして年を取るにつれて、私が感じて経験したことを少しは、書き留めてみたいと思った。 そして人生をあまり深刻に考えないで 周りの小さな感動を,ただ隠された絵を探すように、してみたらどうか、という漠然とした考えで恥ずかしいが、配信を始める事にしました。

もし閲覧者の皆さんと、一緒に共有できることがあれば、どれほど幸せだろうかという気持ちだ。
(byエルラン・ 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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